#1. 감정
나는 내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.
내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타인의 감정에 공감도 쉽지 않다.
다만 감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공부하고 공부하여 감정중심의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와 선을 지키면서 그들과 대체로 잘 지내는 편이다.
가끔씩 내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겠고 헷갈리때가 있다.
이때에 나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엄청나게 많은 “생각”을 하게 된다.
특히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감정적 피드백을 받았을 때 상대방의 감정과 그걸 받은 내 감정 모두가 어렵기 때문에 두배로 에너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.
그래서 나는 감정이 단순한 사람들이 편하다.
또는 단순한 감정만을 교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좋다.
내가 좋아서 나에게 화를 낸다는 사람들은 정말정말 어렵다.
#2. 영원함
열여덟열아홉 자취시절(대략 1992년 정도)에 친구 녀석 (정확히는 친구의 친구)이 내 자취방을 찾아왔다.
이전에 한번 어울려 놀았던 게 전부였던 친구인데
하룻밤 신세를 지겠다고 찾아온 것이다.
사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
처음엔 조심스럽고 어색했으며
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친해졌고
급기아는 친한 친구들과도 하지 못한 깊은 이야기도 나누며
밤새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.
그날 그렇게 먼저 잠든 내 자취방 책상 위에
그 녀석은 쪽지 한 장 남겨놓고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갔다.
이후로 가끔 그 녀석은
내 여사친의 남자 친구가 되었다는 소식도 들은 적도 있고
사회생활 하면서 알게 된 고객사 담당자가 그 녀석의 동창이란 것도 알게 되기도 했지만
마주 친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.
다만 그날 그 녀석이 쪽지에 남긴
두어 줄의 문장이
삼십 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는 것
“오늘 우리는 이 우주에서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였다.
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이 순간은 영원 할 것이다”
- 순간의 영원성을 기억해줘 친구
#3. 망상
어쩌면 과학도 신앙도 모두 망상에 불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.
결국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고찰이며, 접근방식의 차이 일 텐데 결국 같은 믿음 아니겠느냐는 생각
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우주에서 믿고 싶은 걸 믿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.
현실이든 망상이든
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
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그만이다.
나는 당신의 우주로 초대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.
#태그없음